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7 긴급회의 (문단 편집) === 회의결과 === 8.7 긴급회의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당원에게 호소함>[* 서진영의 중국혁명사에서는 <전체 당원 동지들에게 보내는 글>로 번역했다.]을 채택, 발표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가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의 형식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천두슈가 멘셰비키와 같은 방식으로 민족해방운동과 계급투쟁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파악하였고, 계급투쟁의 격화는 국민혁명에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당중앙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계급적 요구를 제약하고 자본가 계급과 지구 계급에 대한 혁명투쟁을 자제하도록 하였다.'''|| 이에 천두슈는 북벌 와중에 고조된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열기를 무시하고 국공합작 유지를 위해 토지혁명 심화를 저지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무장화를 태만히 한 우경 기회주의자, 멘셰비키로 규정, 총서기직을 박탈했고 <당의 조직문제 결의안>을 채택, 취추바이, 샹중파, 리웨이한 3인으로 구성된 중앙 임시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취추바이를 신임 중국 공산당 중앙 총서기로 선출했다. 그리고 제6차 대표대회 소집 이전까지 당을 이끌 정치국 위원들을 선출하였다. [[쑤자오정]], [[샹중파]], [[취추바이]], [[뤄이눙]], [[구순장]], [[왕허보]], [[리웨이한]], [[펑파이]], [[런비스]] 등 9인이 정위원이었고 [[덩중샤]], [[저우언라이]], [[마오쩌둥]], [[펑궁다]], [[장타이레이]], [[장궈타오]], [[리리싼]] 등 6인은 후보위원이었다. [[장궈타오]], [[저우언라이]]는 난창 폭동 등의 실패에 책임을 묻고 후보위원으로 일시 강등당했다. 당의 조직문제 결의안은 믿을 수 없고 의심스러운 분자들을 축출하여 당조직의 비밀운영과 공산당원의 당성 을 보장할 것을 결의하고 성 이하 각급 위원들에게 상급기관으로부터 심사를 받아 당성을 공고히 하고 기회주의자를 축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한 8.7 긴급회의는 결의문을 통해 중국혁명이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민주혁명단계에서 사회주의 혁명단계로 이행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반제투쟁, 계급투쟁, 사회혁명을 상호 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라고 비판하며 노동자, 농민의 계급투쟁을 심화, 발전시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헤게모니를 관철함으로 '''먼저 [[국민혁명]]을 완성시키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천두슈의 '기회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현실 무산계급과의 일체감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 급진적인 당의 대중화 방침"을 채택하고 다음과 같은 전략방침을 결정했다. * 각지의 빈농과 소농을 조직하고 동원하여 대지주와 중지주의 토지를 몰수하는 토지혁명을 실행한다. * 노동자와 농민을 동원하여 혁명적인 좌파 국민당의 기치 아래 총폭동을 일으키며, 특히 추수시기 호남, 호북, 광서, 광동 등 4개 성에서 농민들의 조세저항을 유도하여 추수폭동을 일으킨다. * 각지에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한다. 이후 총서기 취추바이의 주도에 따라 전개된 중국 공산당의 혁명전략을 취추바이노선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